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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리호

by 랜디 로즈 2021. 2. 9.

 

 

예전에, 고객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던 한 동료와 제가 고객사의 여직원들을 모시고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직원분들을 모시고 뻔한 술을 마시면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을 것은 뻔한 노릇이고, 어떤 이벤트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히트하던 어떤 영화를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듣고 저녁 식사 후 영화를 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코엑스의 모 극장 체인 한관을 통째로 대관하여 단체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영화를 보는 동안, 조마조마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 영화가 재미 없으면 어떡하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회사에서 이벤트 후 피드백을 좀 많이 중요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영화가 지독히도 재미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스토리에,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조차 없고, 억지로 맞춰놓은 판타지에다 여고생용 하이틴 로맨스의 마지막 대사에서 잘 나오는 대사로 끝을 맺으며 영화가 끝이났을 때, 제 동료는 큰일났다고 걱정하며 이 영화를 추천한 사람을 죽여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생체실험으로 늑대와 인간의 변종이 만들어지고 (도대체 늑대와 인간의 변종은 왜 슈퍼파워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 변종이 악에게 이용되는 것을 반대한 늑대 소년을 사랑한 박사가 늑대를 탈출시키만 결국 늑대 소년은 홀로 버려지게 되고, 혼자 숨어살던 늑대 소년은 원하지 않게 시골에서 살게된 소녀에게 보살핌을 받게 되고, 그 소녀를 짝사랑한 싸가지 없는 한 남자가 처음보는 M-16을 훈련받은 특수부대원에게서 빼앗아 난동을 부리지만 늑대 소년이 구해주게 되고, 결과적으로 늑대 소년을 걱정한 소녀에 의해 시골 마을에 남겨지게 된 늑대 소년은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다시 나타날때 까지 기다리고 결국 재회한다는 이런 쌍팔년도 하이틴 로맨스에서도 나오지 않을 이야기.

 

상영이 끝이나고 전관을 대여했단 극장의 불이 켜지자, 동료의 걱정은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영화를 본 고객사 여직원은 눈물을 펑펑흘리면서 이런 걸작을 보게 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내 평생 본 영화중에 손 꼽을 수 있을 영화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송중기의 얼굴을 단 첫 사랑이 나이든 나에게 "당신을 여기서 기다렸어요. 늙었지만 그래도 예뻐요"라고 말하는, 송중기 주연의 <늑대 소년>이었습니다.

 

<승리호>의 감독은 <늑대 소년>을 감독한 조성희 감독입니다. 그리고 <승리호>는 딱 거기까지 입니다. 그럴듯 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캐릭터는 따로놀고 플롯은 뜬금없고 이야기는 장황합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많이 따라하려 한 노력이 보이지만 (리처드 아미티지의 캐릭터는 딱 로난이죠)30년이 넘은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캐릭터들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늑대소년>에서 소녀는 늑대소년에 의해 구원받습니다. 거꾸로 말한것이 아니예요. 응답하라 시리즈가 작가의 과도한 주인공 자기 반영으로 성공했듯이, 늑대소년 또한 그렇습니디. 감독은 늑대소년에게 자가이입했어요. 늑대소년의 송중기는 잘생기고 힘쎄며 한 여자만 사랑하는 캐릭터였고 그 캐릭터는 여성(또는 일부의 남성)에게 먹혔습니다. 승리호의 캐릭터 역시 그렇습니다. 모든 캐릭터는 각자의 뒷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뒷 이야기는 승리호 주인공 캐릭터들을 ‘사실은 선하지만 악한 환경으로 독한 사람이 되었으나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선한 본성이 튀어나오는’ 캐릭터라는 것을 설명하는 역할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독특한 캐릭터들일 것으로 보이던 처음에 비해 후반부에서는 모두가 같은 부대의 독립군이거나 저그티스리그 멤버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늑대소년의 경우와 같습니다. 모든 캐릭터는 (그렇지 않아보이려고 상당히 노력한) 단순한 스테레오 타입 캐릭터예요. 이런 캐릭터에는 몰입이 쉽게됩니다. 이야기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정의의 용사인, 내가 정의의 용사라고 내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재리만족 캐릭터일 뿐이죠.

이 영화는 딱 거기까지 입니다. CG 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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